아키비스트의 눈 세번째 이야기가 올라왔습니다^^ 
더 많은 협회원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사무처로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기록학 공부를 한답시고 매주 주말마다 책가방을 둘러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주말 아침이라 아직은 한산한 서울 시내 거리를 구경하면서 학교로 갔다.

공부를 하고 사람을 사귀고 시험을 보고 논문을 쓰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기관에서 기록연구를 시작해도 좋다는 기초 ‘자격’을 갖췄다.

 

자… 이제 ‘자격’이 생겼으니 이 자격으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지에서나 봤던 구*, 샤*의 등 명품 브랜드에서 일하는 아키비스트가 되고도 싶었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살아있는 시즌 마다 쏟아져 나오는 명품 브랜드의 제품은

살아있는 예술 작품과 같다고 했던가?

그 곳의 아키비스트들은 매일 얼마나 행복할까를 상상하며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런 페어리 테일(fairy tale)이 곧 펼쳐지지 않겠어?

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면 하얀 북극곰이 빨간 뚜껑의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미소짓는,

아틀란타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의 아카이브즈가 그렇게 잘 되어있다던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에서 나오던 수도원 속 장서관을 떠올리며

백 년 넘게 이어져오는 기업의 비밀이 가득한 곳으로 들어가보고 싶기도 했다.

나는 그런 곳을 꿈 꿨다. 왜냐면 난 이제 ‘자격’있는 여자니까!

 

기회는 왔다. 내가 주로 쓰는 메일 서비스를 하는 한 글로벌 기업,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아니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한다는 그 회사!

회사 식당밥은 뷔페같고 내부에 온갖 놀이시설이 즐비하며

노는 건지 일하는 건지 헷갈린다는

그 회사에서 기록학을 공부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면접 보러 오세요~”라는 말에 ‘

그 큰 IT회사에서 기록학 공부한 사람을 왜 찾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록관을 만들려나? 총무과내 문서고에서 기록물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가?

내가 어떤 점에서 쓸모가 있다고 판단해서 보자고 한 걸까?’

온갖 상상이 다 들었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자격’은 가졌으나 아직 접시물 같은 얇디 얇은 지식과 경험 밖에 없던 나는

그 회사가 기록관을 세우거나 기업 내부 기록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 거라고 상상하며

면접을 보러 룰루랄라 갔다.

실무자로 보이는 팀장급 같은(?) 젊은 면접관이 두 명 들어왔다.

그들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백 만년 거리의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내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그리고 취업의 기회도 우주선을 타고 함께 날아갔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했던 것은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들이 알기로 기록학이나 도서관학에서는 분류를 전문적으로 배운다고 하는데

가령 만약 우리가 여행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한다면

호텔, 모텔, 여관, 여인숙, 홈스테이, 유스호스텔 등등

다양한 종류의 숙박시설을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분류해서 서비스 하는 것이

유저들이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가? 그런 종류의 질문들과 함께

다양한 제시어를 쪼개고 묶고 해서 카테고리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했다.

‘분류’를 배웠고 ‘정리와 기술’까지 배운 여자였지만

순간 멍해져서 음… 음… 음… 한참을 생각했고 대답했지만

내 대답은 그다지 논리적인 답변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들은 내가 기대했던 총무과 직원이 아니었고

그들은 기록관리가 아닌 다른 사업에 내가 배운 지식을 써먹으려 했으나

나의 무지와 경험의 부재로 그 기회는 훨훨 하늘로 날아갔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배운 지식이 이렇게도 이용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며

역시 기록학 공부하길 잘했다는 엉뚱한(?) 결론만 내고 집으로 왔다.

 

몇 가지 더 생뚱맞은 취업 관련 에피소드가 있지만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지금은 우리가상상하는 그대로의 기록관에 터를 잡고 일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안드로메다의 질문을 던져준 그들에게 가끔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던진 질문을 떠올리면서

내가 일을 창의적이고 논리적으로 처리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점검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했던 창의성과 논리성은

아마 모든 기록관 업무의 공기와 같은 기초적인 것이지만

사실 아직도 나에겐 기록관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업무인

가령 기록물의 체계화(organizing)같은 논리와 창의를 바탕으로 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이래서 단순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고민에 고민을,

연구에 연구를 거듭 하라고 우리 보고 ‘전문’ 요원 혹은 ‘연구’사라고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끊임없이 갈고 닦다 보면 언젠가는 어려운 과제가 툭 떨어져도

‘훗!’ 미소를 날리며 휘리릭 해치울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 By 너트크래커






 





Posted by 한국기록전문가협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Deniz 2014.04.17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기록학계가 많이 부족한 부분 같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관리를 위한 조직만 배웠지 서비스를 위한 조직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저도 자극 받고 아침을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