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in Liquid Times (2017)에 실린

'기록이론의 전통적 경계를 넘어서서 : 에릭 케텔라 인터뷰'의 번역본입니다.


(Beyond the traditional boundaries of archival theory : An interview with Eric Ktelaar)




해당 인터뷰를 번역해주신 이상민 협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번역본] 기록이론의 전통적 경계를 넘어서서-에릭 케텔라 인터뷰.pdf




*원문 다운로드는 아래 링크를 통해 가능합니다.

(Archives in Liquid Times (2017)의 295쪽 ~ 305쪽에 실려있습니다.)


<원문 다운 링크>


 



기록이론의 전통적 경계를 넘어서서: 에릭 케텔라 인터뷰

- Archives in Liquid Times (2017) 중에서 -

 

편집자:

이 책(<유동적인 시대의 아카이브>)에서 제시하는 핵심 쟁점을 논의하기 전에 보다 일반적인 문제부터 논의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이 책에 <유동적인 시대의 아카이브>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그 이유는 많은 차원에서, , 개념, 기초, 윤리 차원에서 우리 기록전문직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 보이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용어로 유동적인상태에 있다는 은유가 적절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록전문직과 기록이론의 현 상황에 대한 당신 의견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유동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데 동의하나요?

 

에릭 케텔라:

지금이 여러 상이한 견해가 존재하는 시기라는 점에 동의합니다만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포스트모던 철학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무엇도 고정적인 것은 없으며 사물은 항상 변화한다라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내 생각엔 기록은 결코 종결되지 않으며 항상 움직입니다. ‘유동적이라는 은유는 좀 부정적으로 들리는데요. 마치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고 확실하지도 않고 고정적이지도 않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우리 기록전문직에 관한 한 그 은유는 좀 과하다싶고 너무 부정적입니다. 이 책에 있는 거의 모든 논문이, 맥락 출처 등과 같은 기록학(archivistics)의 기초 개념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개념들이 아직 우리가 살고 있어야 할 분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개념들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엄격하고 변치 않는 개념들은 아니기는 하지만 이 개념들을 신뢰할 수는 있습니다. 각각의 개념은 역사가 있지요. 물론 이 책의 논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기록전문직은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 편집자들이 이 책을 전면적으로 펴내려고 한 사실 자체가 당신들 스스로가 바우만의 은유처럼 불안정하다[유동적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내가 주장했듯이 우리 기록전문직은 보수적인 입장에서 조용히 일하는 편에 속합니다. 그건 도서관 사서직보다 더하지요. 이 얘기는 이미 40년 전에 얍 반 데르 고우가 [협회장? 국가기록관장?] 취임 인사에서 말했던 겁니다. 네델란드의 경우에는 기록전문직이 너무 일찍 전문직화되었고 우리가 교회가 있기 전에 성경을 먼저 가지고 있어서너무 오랜 기간 동안 기록전문직이 실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치 기록관리매뉴얼>의 공저자인] 프루인이 70대까지 국가기록관장으로 재직한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프루인은 국가기록관을 장악했고, 기록교육자로서, (아카이브학교를 설립하고 입학시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지요) 네델란드아키비스트협회 회장으로, 그리고 1920년 이후에는 <더치 기록관리매뉴얼>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전체 기록전문직을 완전히 통제했습니다. [다른 공저자인] 뮐러와 더불어 프루인은 기록전문직에 아주 보수적인 영향을 끼쳤고 보수적인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1980년대에 젊은 기록전문직이 이 기록학의 일차원적인 관점에서 해방되기 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의학이나 법률 분야 같은 다른 모든 전문직이 가진 이론에 대한 신중한 경향과 맥을 같이 합니다. 내가 레이든과 암스테르담에서의 취임 연설에서 기록학 이론이란 기록을 보존서고 서가에 보존하려고 애쓰는 수고이라고 주장했던 미국의 저자들을 인용했던 것을 기억해보십시오. 그러나 글라우드만과 베르부르그츠의 논문 첫 문장에 나오듯이 나는 항상 이론이란 우리 기록전문직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유동적시대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가서, 뿌리 깊은 낙천론자로서 나는 포스트모던적인 유동성을 하나의 도전으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바우만이 의미한 것처럼 유동성을 어떤 매우 어두운 현실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편집자:

그렇다면 당신은 유동성이란 어떤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문제를 개선할 여러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인데요. 그렇지만 우리는 기록전문직에서 더욱 근본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놓치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이 유동성이라는 용어를 채택했습니다. 그것이 이 책을 낸 이유이기도 하고요.

 

에릭 케텔라:

이미 말했듯이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인정하고 칭송하는 겁니다. , 이 책은 기록 이론의 전통적 경계선을 넘어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다른 학문분야에서 배우려고 하지요. 이 책에서는 여전히 놓치고 있는 학문분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록학논문집] <아카이브즈의 다중적 세계>(Archival Multiverse)에 있는 내 논문에서 나는 사회학, 인류학, 예술공연과 안무학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당신이 편집한 이 책이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 뷰셀의 논문 같이 더 연구가 필요한 영역을 지적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한 없고 끝이 없는책입니다. 경계선을 설정함으로 해서 과거에 기록전문직이 빠졌던 동일한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 생각해서 기록학이 데이터과학일 뿐이라고 믿지 않는 한, 혹은 주로 세상의 알고리듬화라고 믿지 않는 한, 우리는 [다른 학문 분야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기록학과 관련된 학문 분야가 아주 많이 존재합니다.

 

 

편집자:

2014년에 이 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처음 한 생각은 정보철학 분야와 관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정보철학 분야 사람들 중에는 아키비스트들과 대화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에릭 케텔라:

충격적이고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의 저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아카이브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이고 아주 소수만이 외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더 일반적인 인식론적 문제를 보여줍니다. 2012년에 난 아카이발 사이언스지에 기록학 십년간의 동향에 대해 짧은 글을 썼습니다. 이 학술지의 원래 취지는 우리가 다른 학문 분야에 손을 뻗자는 것이었습니다. 5년 전에 이것을 다시 체크해봤는데 기록학 학술지가 아닌 학술지에서 기록학 논문에 대해 참조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와 같이 흥미로운 문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 전문직으로서 우리가 다른 분야의 전문분야와 호혜적으로 생각을 교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전문분야가 우리의 교류 목록에 가장 우선적인 위치를 차지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편집자:

아마도 두 가지 형태의 전문분야 간에 구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기본에 관한 것, 정보의 구조에 관한 전문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의 사용과 재사용에 관한 전문분야입니다. 이 두 전문분야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별로부터 다른 전문분야를 더 잘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에릭 케텔라:

기록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책 대신에 이 논문들을 심리학이나 인류학 학술지에 제출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나 봅시다. 누구나 우리가 학제연계적인[다른 여러 전문분야와 연관된]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동의하지요,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다른 전문분야에서 개념을 빌려온 순간 전문분야의 경계선을 부순다는 비난을 받게 되기 쉽지요. 우리 모두가 해결할 도전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한편으로는 우리가 우리 전문분야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 계속 어떻게 다른 전문분야에서 사람들을 초청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초청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최소한- 우리 아카이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타 전문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알게끔 촉구할 것인가 하는 도전과제가 있습니다. 당신은 편집자로서 암묵적으로 나타내기는 하지만 우리를 구원해 줄전문분야로 정보철학을 강력하게 그 사례로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난 그것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정보의 개념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제프리 야오가 주장한 보존기록 문서가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란 기록으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수많은 산출물 중의 단지 하나일 뿐이다라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정보철학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기록학과 정보철학 간에 쌍방향의 영향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기록전문직이 촉발한 이러한 접촉의 결과로서 플로리디(Floridi)의 다음 책 안에 아카이브즈란 핵심 단어가 백배 이상 사용될 것인지?

 

편집자:

현대 정보철학,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정보윤리에서 다루는 주제 중에 하나는, 작금 나타나고 있는 가짜 뉴스 현상에 대해, 신뢰성 있는 정보의 보관자로서 아키비스트가 더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주제입니다. 초점이 정부에서의 아카이브즈 기능을 지나쳐서빅데이터의 훌륭한교환을 향해 옮겨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다국적 자동차회사로부터 의료 분야에 이르기까지요.

 

에릭 케텔라:

정보철학 분야에서는 사람들이 명백히 기록학(archival science)이 무엇인지, 혹은 기록학이 무엇일 수 있는지/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잘못된 생각, 최소한 불완전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내게는 아카이브즈(대문자 A)는 탈진실(post-truth)(가짜 뉴스 현상)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작성한 탈진실적 트윗은 신뢰성 있는, 진짜 대통령기록입니다. 그 트윗의 내용이 허위라는 것은 단순히 별개의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종종 말했듯이 서기 1000년 이후 가장 오래된 네델란드 보존기록은 가짜 기록, 위조문서(혹은 외교적 언어로 겉보기에 원본처럼 보이는 기록)입니다. 나는 이 기록에 대해 아키비스트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위조 문서, 가짜 기록을 가지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한다면 네델란드 국가기록관이 소장한 기록의 반은 갖다 버려야 합니다. 그 기록들이, 예를 들면 트럼프의 트윗이, 진실한 사실을 나타낸 것인지 허위인지를 알아낼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간 후에 이 기록을 연구하는 이용자들-정치인, 언론인, 역사가입니다. 그렇지만, 나라면 보존기록관리기관과 아키비스트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해 줌으로써 그러한 [이용자들의 기록 내용 진위] 평가를 도와줄 것을 제안할 것입니다. , 이 기록의 맥락은 무엇인가, 그 업무절차가 무엇이었는가, 예를 들어, 트럼프의 트윗과 각료회의 기록과의 관계 같은, 다른 기록과의 보존기록적 결합성(archival bond)은 무엇인가 등이 질문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난 우리가 기록의 사실 여부나 허위성을 평가하는 특정한 직무를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록의 가치는 말하자면 그 기록을 보는 사람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진실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여기에 누가 책임이 있는가로 귀결됩니다. 레코즈매니저[기록관리자]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 사람이 그 대통령의 트윗에 진실혹은 비진실이라는 태그를 달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트윗이 기록인지 여부는 여기서 논의되지는 않습니다. 디플로매틱스[기록간의 관계 분석을 통해 기록의 진위를 가리는 기록학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록이 그러한 기록으로서 진본성이 있고 신뢰성이 있다고 주장할 있지만, 그 기록 안에 있는 정보나 메시지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레코즈매니저가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편집자:

이것이 바로 정보철학과 기록학(achivistics) 간의 차이점입니다. 1898년의 <매뉴얼>에서와 같이 그 기록물 물체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그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습니다. 플로리디 논문을 읽을 때 당신은 그가 기록물의 신뢰성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고 그 내용의 신실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겠지요. 이것은 두 학문 분야 간에 매우 큰 차이점입니다. 문제는 이 양자 간에 어떻게 다리를 놓을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한편으로는 플로리디의 정보철학 안에는 기록학적 사유에 매우 유용한 몇몇 개념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차이점을 알아서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지난 번 마지막 인터뷰에서 플로리디가 강조한 중요한 사항은 오늘날 정보가 바로 코앞에있지만 우리는 디지털 정보의 실제적 물질성을 잊어버린다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트코인 같은 것을 예로 들었지요. 전기가 없으며 이 코인은 그냥 없어집니다. 디지털의 물질성은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보존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릭 케텔라:

작년 ICA 서울 총회에서의 기조 연설에서 나는 디지털의 물질성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애틀란타의 에모리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샐먼 러시디의 보존기록을 언급했습니다. 이 보존기록은 종이, 하드 디스크, 네 대의 PC, 몇장의 시디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정보를 갖고 있는 물질 혹은 물체입니다. 이 기록을, 말하자면, 새로운 매체에 이전하면 무엇인가를 [원래 물체 안에 있는 무슨 정보를] 잃어버릴 겁니다. 그래서 이 도서관에서는 (1997/8년에 판매된) 매킨토시 퍼포마 5400 컴퓨터 뒤에서 마치 샐먼 러시디처럼 흉내낼 수 있게 시뮬레이션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우리가 많은 물질과 물체를 보존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래야만 정보나 기록이 당초에 처음 사용되었던 것처럼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보존기록관리기관에 소장된 모든 보존기록은 더 이상 원본 보존기록이나 진본 기록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슨 일을 했습니까? , 보존기록이 도착했습니다. 어떤 질서대로 정리되어서 혹은 무질서한 대로. 그리고 우리는 이 기록들을 해체하고 다시 새 폴더에 집어넣고 무산성 보존상자에 넣었지요. 예를 들어 나는 네덜란드의 국가기록관에서 어떻게 국가 총독의 기록이 그 기록의 주요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 시뮬레이션을 보고 싶습니다(현재 네델란드 국가기록관의 기록 전시는 그 노력을 칭송할 만하지만 역동적이지도 않고 전체를 아우르지도 못합니다). 당신은 데리다가 기술의 변종 변천이 보존기록의 내용을 변경시켰다고 주장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메일 송신자가 몇 초 안에 답장을 받기를 기대한다는 가설이 당신이 이메일을 쓸 때 영향을 준다는 거지요. 이런 기록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관리되는지 계속 알려면 수많은 디지털 인프라를 보존하거나 시뮬레이션해야 할 겁니다.

 

 

편집자:

플로리디의 주장에 대해 다시 얘기해 보겠습니다. 지난번 마지막 인터뷰에서 플로리디가 말한 것에서 당신은 구글 사회[구글이 모든 자료를 수집 보존하고, 사람들이 구글로 온갖 자료를 검색해서 이용하는 사회]에서 아카이브가 한계가 있는 존재가 되고 있다고 결론내리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현상이 정부 안에서 또 우리 개인적 경험에서, 우리가 아카이브 기능을 갖고서는 중요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구 학문전통에 따라 기록에 기반한 접근방식을 계속 취한다면 종국에는 결국 의미 있는 정보를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요? 이것이 디지털 정보-데이터과학, 데이터 품질 등-에 대해 더욱 본래적인[자연적인/태생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정부에서 혹은 정부 업무절차에서 사용되는 앨고리듬적인[컴퓨터 연산] 기능을 더 잘 포착할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즈가 한계적인 존재가 된다는 대안은 확실히 나쁜 대안이고 두려운 대안인데, 그래서 당신은 아마도 다른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에릭 케텔라:

동의합니다만 내가 물체로서의 기록물에 주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보존기록에 관심이 있습니다. 당신이 과정을 보게 되면 자동적으로 보존기록의 과정(archive process)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가게 됩니다. 정부를 예로 들어본다면 보존기록 과정은 공무원이나 장관의 책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초점을 보존기록 과정의 시작점으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20147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MH17 항공기 추락사건을 예를 들어 봅시다. 국회의원들이 원하는 것처럼 ‘MH17아카이브는 사후에 구성되어져서 큰 아카이브가 아닐 겁니다. 이 아카이브는 다양한 기록생산부서에서 생산되었거나 아직도 생산되고 있는 상호 교차되는 텍스트 문서 집합체입니다. 국가기록관은 그냥 조용히 앉아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 기록들이 국가기록관에 이관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국가기록관의 책무는 이 기록 집합체들이 안전하게 생산되고 보관되고, 접근이용될 수 있도록 사전에 능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탈진실적 [post-truth, 여론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이 더 영향을 주는 상황이나 현상] 트윗이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오면, 아키비스트는 어떤 식으로든지 플로리디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트윗이 진실이냐 아니냐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정부기록과 마찬가지로 그 트윗을 통한 정부의 설명책임성에 대해 우리가 더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요점은 설명책임성입니다. 그리고 설명책임성을 위해서는 [기록의] 맥락이 필요합니다. 맥락이 전부입니다: 맥락은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보존기록의 원칙 혹은 개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장점입니다. 우리는 정보전문가들과 정보철학자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들이 정보의 진실성을 추구한다면 맥락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보다 더, 우리가 가진 기록의 개념, 기록이 특정한 맥락 안에서 생산되고 보존기록의 결합성(archival bond)을 가지고 있다는 기록의 개념을 그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혹은 그 누구든, 정보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디지털 시대에, 즉 이것이 이른바 유동성인데, 사물은 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이기록 시대에 적용된 출처주의는 내 생각에 지금도 유효합니다. 당신이 이 새로운 환경에 그 출처주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그 원칙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면요.

 

이미 벌써 평가나 접근 등에 있어서 소위 참여 모델제안이 많은 것을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우리가 크게 고려해야 할 것은 이용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렵니다. 아닙니다. 이용자는 보존기록 과정의 부분입니다. 기록의 주체 (예를 들어 시민) 아직도 정부가 보기에는 공동생산자가 아니라 대상입니다. 평가를 예로 들어보지요. 다행스럽게도 네델란드에서는 우리 기록업무절차 중에 보존기록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나는 대학에서 기록처분일정을 만들 때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참여 모델에서는 어떠한 [기록관리업무] 절차라도 어느 지점에서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는 여기서 많은 역사적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시정부 기록관리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시민들간의 거래를 시정부가 진본기록으로 보증하도록 시민들이 요구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세금 납부자의 명단을 만들게 하고, 시 조례를 보존하게 하고, 그 조례들을 복사해서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편집자:

이 책의 논문 저자들은 개념, 원칙, 모델, 윤리 쟁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공헌한 점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까?

 

에릭 케텔라:

반 뷰셀은 첫 번째 논문에서 1990년대 이후 기록학 이론에 대한 비판적 개관을 제공하는데 뷰셀은 그 90년대 이후 시기를 보존기록의 르네상스시기라고 주목합니다. 나는 그 용어가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록연속체론에 대한 뷰셀의 비판은 조금 지나치게 부정적입니다. 대체적으로 나는 뷰셀이 디플로매틱스를 비판한 내용에 동의합니다. 90년대 이후의 보존기록 르네상스 시기에 무엇이 보존기록인가, 어떻게 보존기록이 생산, 유지, 관리되는가 하는 질문이 응당 받아야 할 관심보다 적게 받았다는 뷰셀의 평가를 나는 옳다고 믿습니다. 이 문제는 반 뷰셀의 두 번째 논문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에른스트의 첫 번째 논문은 읽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이 논문은 매체(media) 고고학에 대해 아주 중요한 지식을 제공합니다. 시청각 매체에 관한 두 번째 논문은 약간 실용적입니다. 아키비스트는 매체 고고학에서 많은 방법론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 가지 다른 전문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이 두 개의 전문분야는 -앞서서 논의했듯이- 물체의 물질성, 인프라구조의 물질성에서 서로 만납니다. , 매체를 정보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조사연구의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텍스트가 점점 더 적어지고 동영상 이미지가 더욱 많아지는 세계에 우리가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에른스트의 접근방식은 유용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당신이 포착[획득]하려고 하는 것의 물질성이 맥락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을 역시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요? 에른스트가 묘사한 매체의 가능성, 불가능성, 그리고 중요한 영향력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시청각 매체의 맥락을 다룰 때 누가 텍스트 문서와 다르게 작업할까요?

 

에릭 케텔라:

아니요. 맥락은 개념입니다. 맥락이 물질적 자기 표명이냐 아니냐는 맥락에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습니다. 양자의 경우에, 물질(물체)과 비물질(업무절차 중심)의 경우에, 기록이 생산되고 이용된 맥락()을 당신은 포착(획득)해야 합니다. 설치예술을 예로 들어, 예술가들이 어떻게 보존기록을 취급하는지 보십시오. 관람자, 이용자, 혹은 그 어떤 개인이라도 그 설치[예술]의 부분인 수많은 설치예술 작품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방에 들어가는 순간 설치[예술]시작됩니다.’ 비디오나 혹은 무엇이든간에. 여기서 무엇이 물질이고 무엇이 물질이 아닌가요? 이 설치[예술]의 물질성은 어디에선가[어느 지점에선가는] 포착되어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비물질적인 공연예술에서조차 그렇습니다. 혹은 발레나 댄스의 서문에 내가 사용한 예를 든다면, 그 전체를 포착[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이 그 물질성을 포착하는 것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무대에서의 발레 공연의 비디오조차 이 공연에 관객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서라도 그렇지요. 우리는 왜 아직도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공연합니까? 왜냐하면 모든 공연-모든 경우-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한 시즌에서조차 관객과 공연자가 상호작용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르겐스가 묘사한 데이터의 도처편재성(ubiquity)[데이터가 인터넷, 개인 저장장치, 인하우스 클라우드 등 도처에 존재한다는 성질]은 기록 생산과 획득에 많은 영향력을 끼칠 것 입니다. 인간과 기계간의 협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르겐스의 논문에서 제기된 아주 중요한 또 다른 쟁점은 기록 생산과 평가의 기계화’[자동화]입니다. 이것은 문화유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존기록이나 기록생산자의 설명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서의 기계화입니다. 유르겐스는 오늘날같이 데이터가 도처에 편재하는 시대에 직면해서 평가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고재검토해야 한다고 정확하게 강조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자료 ('raw' data)와 기록을 법률적 의미에서 구별해야 합니다.

 

글라우드만스베르부르그트의 공헌은 앞에서도 논의했지만 기록의 물체로서의 개념을 우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록은 산출물로서가 아니라 과정으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기록의] 보관(consignation)이 일어나는 곳이 현재 두 개의 영역이 있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기록이 어디에선가는 존재해야하기 때문에, 클라우드 안에서조차 기록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우드도 국가기록관처럼 기록의 보관장소라는 주장말입니다. 그리고 기록의 보관은 고정성과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보관을 더 넓은 의미의 용어로 이해합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플루세르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공간에서 [기록의] 송신자이자 수신자라는 사실이 거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플루세르가 강조하듯이) 공공과 사적 분야의 구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경우에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플루세르에게 공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당신과 내가 함께 기록을 보내고 받는다면 나는 그것을 사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나는 기록이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정보는, 예를 들어 증거, 설명책임성, 정체성 등에 바로 이어서, ‘기록과 결부[연계]되어 발생하는기록이 제공하는 산출물’(affordances)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예오(Yeo)의 견해가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예오는 구별합니다.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은 그 기록을 이용하는 어떤 사람이 있는 정도만큼만 정보를 함유한다고 말합니다. 기록이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정보철학자들에게는 매우 슬픈 메시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록] 물체가 그 자체 안에 내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는 그가 옳습니다. [기록과] 상호작용하는 -보거나 이용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이 물체에 그 의미를 주는 것입니다.

 

 

편집자:

그렇다면 의미 있는 데이터로서의 정보의 정의는 실패하는 겁니까?

 

에릭 케텔라:

,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입니다. 누구에게 언제 데이터가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내가 예오를 옳게 이해했다면 데이터가 의미 있게 되는 것은 누군가 거기에 의미를 첨부했기 때문입니다. 이 누군가는 심지어 기계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지요. 이것이 진실일까요?

 

편집자:

우리가 예오를 위해 대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밀어붙이는 식이면예오는 그런 견해를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오가 정보적 양상을 일단 제쳐 두고 기록의 수행적 양상에 초점을 두자, 심지어 알고리듬에 초점을 두자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지요.

 

에릭 케텔라: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글을 쓰고 있는 작자를 예를 들어 봅시다. 작자가 저장혹은 보내기단추를 누르는 순간 작자는 더 이상 의미 있지않고 이 작자가 가진 특별한 의미를 수신자와 공유하는데 더 이상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수신자는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는 거기 있고, 그 생산 맥락 안에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그 데이터가 경로를 따라 다른 사람이나 기계에게 전달되는 순간 그 의미가 같은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보장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기록의 가치는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습니다. 그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고, 다른 공간에 가면 바뀔 수 있습니다. 그 기록에 대한 각각의 활동은 작자의 [원래] 의미와는 다를 수도 있는 의미를, 새로운 의미를 첨가합니다. 그래서 나는 예오가 기록은 정보를 함유하지 않는다, 정보를 가능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예오가 한 말하는 행동’(speech act)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기록이라는 물체를 넘어서서 바라보고 기록이 어떻게 생산되고 사용되었는가에 초점을 둔 추가적인 방법론, , 기록을 문화적 맥락에서 사회적 실천[관행]의 한 특정한 형태로 보게 해주는 방법론을 제시해 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나는 존커아키비스트는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 물체[정보가 있는 기록물. 객체라고 번역하기는 적절치 않은 듯]가 그것이 입수되었을 때와 같은 품질이라는 것만을 보장하고 확신케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정보 물체는 무결성이 보장되어야 신뢰성이 있다. 아키비스트는 그 정보의 진실성에 대해 말할 수 없으며 윤리적 관점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아키비스트는 자기의 전문성에 의거해서 데이터에 대한 맥락을 제공함으로써 그 데이터의 해석자를 지원할 수 있다, 도울 수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기록관의 열람실에 있는 누군가가 근무 중인 아키비스트에게 와서, 여기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이 진실입니까 아닙니까?라고 물어 본다고 합시다. 그러면 아키비스트는 대답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기록이 변조되어 있군요. 혹은 나중에 편철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등등 이라고.

 

존커는 이 유동적인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 아키비스트는 기록 고정 시점[기록으로 확정하여 고정시키는 시점, fixation]을 찾고 있다. 우리는 [기록으로 결정하여 고정하는] 모멘트[시점]을 고정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고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왜 그 어떤 것이 고정되어야 하는지, 무슨 내용이 고정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이러한 고정이 기술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인가 명백해야 한다라고 썼습니다. 유동적 세계의 특징이 우리가 사물을 고정할 수 없고 고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아닌가요?

 

 

편집자:

. 그것은 모순입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 우리는 정보를 고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 문서에서는 등록대장 등으로요. 시간이 흘러가도 영원할 수 있게 어떤 방식으로든. 이것이 유동적 세계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보존기록도 가질 수 없습니다.

 

에릭 케텔라:

그러나 이것은 유동적 시대라는 전반적인 이념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당신은 우리가 비록 유동적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영구적인 표현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편집자:

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책임성이라는 목적으로요.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백년 후에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보기를 원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존기록[/아카이브즈]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건 그만큼 단순합니다.

 

에릭 케텔라:

반 뷰셀은 두 번째 논문에서 기록학 영역 안의 기존 모델과 이론이 최소한 조직과학[정보조직론이 아님]과 정보과학에 의해 보완되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뷰셀은 조직 과학 방면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나는 특히 뷰셀이 기록의 생산과 사용의 행태적, 문화적 양상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이 좋습니다. 기록보유(recordskeeping)[현행기록관리와 보존기록관리를 아우르는 연속체 기록관리 개념]는 단순한 기술적 과정이 아니며 거기에는 사람들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보존기록화’(archivalization)라는 내 개념이 연구에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아직 실질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다고 뉴셀이 말한 것은 옳습니다. 나는 내 비교연구에서 그것[실질 상황에서의 검증]을 시도했습니다. 이 조직학 모델과 존커의 정보 모델에는 실질적인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이 주제는 독서그룹 같은 데서 더 깊이 다루어 질 수 있는 주제입니다.

 

포스카리니일레르바이그의 논문도 기록보유의 조직적 양상에 초점을 둡니다. 저자들은 디플로매틱스가 다른 철학적, 학문적- 관점의 기본틀 안에 놓여져야 한다는 히더 맥닐의 주장에 동의합니다(두란티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관점). 저자들은 기록을 소통하는 이벤트, 사회적 관행의 형태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장르[일상생활의 여러 유형들]의 구조화하는 기능이라는 렌즈들을 통해 이것들에 접근합니다. 이것은 디플로매틱스에 비해 보다 상향식’(bottom-up) 접근 방식입니다. 이 디플로매틱스는 하향식’(top-down) 요건 세트를 요구합니다. 나의 사회적 문화적 기록학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실제 상황에서 기록을 어떻게 생산하고 사용하는 지 실질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상향식접근 방식이 더 타당합니다. 포스카리니와 일레르바이그가 바로 강조한 것 처럼 아키비스트는 일상적으로 기록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관행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편집자:

현재의 (네델란드의) 기록 생산과 사용 관행은 설계에 의한 아키빙접근방식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기록 환경을 통제하는데 사용되는 응용 프로그램[어플리케이션]에 보존기록 기능을 건축학적으로구축하는 방식입니다. 많은 정부 조직과 기타 이해당사자들이 이런 응용 프로그램들을 정부 과제와 업무를 수행하는 협력 네트워크 안에서 사용합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상향식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결코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릭 케텔라:

이 또한 완다 오를리코우스키가 기술의 이중성이라고 부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어떤 특정한 기술이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형성하지만 그러한 행동 방식 역시 기술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문자메시지입니다. 이것은 고객과 서비스제공자를 연결하기 위해서 설계되었지만 곧 일부 사용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이것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보존기록 ()사용에 대해서 말한다면, 실제로 검색 시설을 찾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시설들을 형성하고 있는지, 또 그들 자신들[검색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예를 들면 자신의 [기록] 조사연구를 디지털 기록에만 한정하는 것) 우리는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합니다.

 

나는 스미트가 티모시 모튼의 하이퍼물체(hyperobject)라는 개념을 쓴 것에는 의문이 갑니다. 그것이 은유입니까 현실입니까? 내가 하이퍼물체를 모든 기록 혹은 모든 디키털 정보의 총체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편집자:

그 용어는 너무 광대해서 그것을 한 번에 훑어보고 이해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네델란드 철학자 르네 텐 보스는 관료제를 나타내는 데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결에서 이 용어는 우리 디지털 환경을 의미합니다. 약간은 은유적으로, 그리고 고고학자들이 그들이 발굴하는 토양을 ‘’bodemarchief‘(토양-아카이브)[훼손되지 않고 충적된 여러 층의 토양층에서 인간의 주거 흔적이나 유물이 발견되는 것]라고 간주하는 것에 비교하여 말한다면 그렇습니다.

 

에릭 케텔라:

그래서 하이퍼물체는 디지털 데이터 전체를 의미하고 그 일부분이 기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데이터는 총체이기 때문에 그것의 일부분인 기록에 초점을 두어서 해체하는 것에 그 해결책이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하이퍼물체의 개념을 파괴하거나 불필요한 과잉으로 만들 것입니다. 기록이 여전히 접근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편집자: 일상의 관행에서 우리는 데이터와 기록을 사용하고 재사용하는 방식에 직면합니다. 그 안에서 그 [데이터와 기록] 둘 사이의 구별이 대체로 모호해집니다. 예를 들면, [기록이] 오픈 데이터 맥락 안에서 재사용될 때 정보 안에 기록성이 얼마나 남아있습니까? 여기서 일반적인 문제는 사실상 사람들이 기록을 쉽게 식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의 획득이란 개념화의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에를 들어, 디지털 환경 안에서 맥락의 양상을 분석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기록을 획득할 것인가를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에릭 케텔라:

나는 이 논의를 위해 기록이 기록보유시스템에 획득이 될 때만 기록이 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데이터의 도처편재성에 있습니다. 무슨 데이터가 언제 기록이 되는가는 정책적 결정입니다. 예전에 한 컨설팅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의 주요 정보자산은 파워포인트 자료였습니다. 난 그 회사 사람들에게 기록에 대한 모든 정의는 다 잊어버려라, 이제부터는 그 파워포인트 자료를 기록보유시스템에 획득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기록을 정의하는 것은 정책입니다. 그것은 아카이브 이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고고학의 토양아카이브개념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하이퍼물체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진본성에 관한 논의, 그리고 진본성을 규정하는 새로운 방식-진본성 확인자, 진본성 확인화 과정, 정보 인지자들(the informed)-에 관한 논의들이 아키비스트들에게 도전과제입니까?

 

 

편집자:

우리의 일상적인 일에서 그것은 도전과제이지요. 예를 들면, 기록 메타데이터 스키마를 사용하고 실행하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어느 무엇보다도 이것은 필수적인 진본성을 보호합니다.

 

 

에릭 케텔라:

그래서 우리는 기록을 기록보유시스템에 획득하고, 그 다음에 그 기록은 보존기록관리기관의 기록보유시스템에 옮겨집니다. 그리고 그 생애 동안 지속적인 진본성 확인 과정이 있습니다. 이 컨티넘 과정에서 우리는 시간 도장(time stamp) 같은 [진본성 확인] 조치를 해야 하는 특정한 지점들을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컨티넘 사고에서 결속되어 있습니다. , 기록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변합니다. 그리고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메타데이터를 통해 기록 초판’(zero version)]까지 이 연결 사슬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케티는 출처 원칙이 디지털 맥락에서, 보존, 사용, 접근, 평가, 정리, 기술에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올바르게 지적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출처는 기록정리 분야에서만 고려되기 때문입니다. 명백히 출처는 다른 분야와 업무프로세스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이 맥락의 개념과 연결될 때는 더욱 더 중요합니다.

 

반 오테를로는 알고리듬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디지털 아카이브즈의 윤리를 탐구합니다. 반 오테를로는 의도된 아키비스트의도적인 알고리듬적인 판본으로 전환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전환은 다른 논문들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가 아키비스트의 문지기 역할을 강조하는 점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아키비스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으로서는 최소한 불완전한 견해입니다.

 

 

편집자:

알고리듬을 설계하는 결정자로서 윤리 규약을 작용하게 할 수 있다는 반 오테를로의 생각에 대한 당신 견해는 어떻습니까? ‘윤리를 자동화한다는 이런 생각은 접근에 관련될 뿐 아니라 (다른) 기록보유 과정에도 관련될 수 있습니다. ‘윤리 자동화에 대한 당신 견해는 어떻습니까?

 

에릭 케텔라:

접근을 규제하는 윤리적 입장과 자동화된 설비는 양자 모두 정치적으로 틀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나는 주장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ICA접근에 관한 보편적인 선언’[세계 접근선언]을 채택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결정입니다. 누구나 보존기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 자연법은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200년 밖에 안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키비스트들은 사용가능성, 설명책임성, 찾을 가능성 등이 보편법이나 자연법이나 원칙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것은 법이지요, 그러나 법이란 사회가 어떤 시대에 특정한 시점에서 옳다거나 그르다고 믿는 것의 표현일 따름입니다. 서로 다른 윤리적 입장이 가능하며, 어떤 한 입장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적 결정입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특정한 세계관에 기초해서 구축됩니다. 내가 접근을 자동화할 때, 디지털 방식으로 접근을 규제하는 결정을 내리는 절차를 설계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나는 소문자 ‘p’로 시작되는 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동성,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얘기할 때 좋은 것입니다. 리오타르가 말하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한 이론에 기초한 설명을 믿지 않고, 사용가능성이 왜 필요하지? 그것은 검증이 되었나? 라는 종류의 질문을 물어본다. 한편으로는 접근에 대한 인간적, 윤리적 결정, 다른 한편으로는 접근을 제공하는 자동화된 시스템의 정치적 구성됨(constructedness)이 일치된다고 나는 봅니다. [접근] 알고리듬 절차는 사람이 설계해야만 하고, 설계된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모두, 정치적이고 윤리적전 기본틀 안에서 설계됩니다. 그리고 물론 여기에는 인간의 행동이 숨겨진알고리듬 절차에 의해 유도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결정도, 어떤 면에서는, 그 못지않게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편집자:

알고리듬은 그 자체에 무언가 신비한 것이 있습니다. , 알고리듬은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정보의 생산에 있어서 숨겨져 있든 숨겨져 있지 않던 간에- 알고리듬 안에 있는 편견이 맥락의 양상이지 기록 자체의 양상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이것을 어떻게 위치시킬생각입니까?

 

에릭 케텔라:

앞에서 한 토론으로 돌아가서, 만약 기록의 (정보적) 의미가 진실로 기록 자체에 있지 않고 열람자나 사용자의 눈[관점]에 있다면, 우리는 자동화된 시스템에서, 혹은 알고리듬적인 프로세스에서 기록의 의미가 알고리듬의 에 의해 생산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알고리듬이 부여한 그런 의미를 우리가 반대할 수 있는지는 설명책임성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 우리가 알고리듬을 법정에 소환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궁극적으로 책임을 집니까? 여기서 설명책임성은 핵심적으로 중요합니다.

 

 

편집자:

인간 존재와 상호작용할 때 독일인이 ‘freies Ermessen’[자유 재량]이라고 부르는 알고리듬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 존재와는 간섭, 토론, 영향이라는 점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습니다.

 

에릭 케텔라:

알고리듬은 프로그램으로 짜여진 것입니다. 대개 애매모호한것이 아닙니다. 로봇 공학과 인공지능에 관한 토론도 비교해보십시오.

 

편집자:

이 인터뷰를 끝내기 위해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록 이론과 기록전문직에 관한 의혹과 불확실성을 볼 때, 기록 전문직이 향후 15년 혹은 20년 후에 어디에 [다른 전문직을 대신해서?] 자리 잡게 될까요?

 

에릭 케텔라:

꾸준히 전개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진행될 것 같습니다. 이 쇼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가게가 계속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 비즈니스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이 큰 도전과제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이론, 방법론, 실무를 고쳐나가야 하고, 다른 전문분야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기록 전문직이 시간을 내서 정말 한 자리에 앉아서 (혹은 일어나서) 여기 우리가 하고 있는 토론 같은 것을 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네델란드에서 아키비스트 훈련을 아카이브학교(Archiefschool)에서 대학으로 옮겨가는 방식으로 계속 전문직화를 수행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제 과거보다 더 이론적으로 기록학을 취급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기록교육 리서치이니시에이티브(AERI)’ 사례처럼, 다른 전문[학문]분야에 보다 개방적이고 호의적이어야 합니다. 네델란드에서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것처럼, 우리는 아직도 너무 심하게 우리 자신의 전문분야를 내향적으로 바라보는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전문분야에 보다 더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대학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만, 실무자 아키비스트들과 기록전문가 단체에게도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그들은 시간을 내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론과 방법론에 관한 토론에 참여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론과 실무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런 토론을 할 수 있게 하는 독서클럽, 토론회, 블로그 등과 같은 구조를 찾아야만 합니다.

 

향후 15년 안에 기록 이론이 극적으로 변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록 이론은 사회의 변화와 연결되기 위해 자신을 적응시킬 것입니다. 이 책에서 기록학의 기본 개념을 논의하고 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내 낙관주의와 더불어 부분적으로 그렇게 전망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어떤 점에서는, 이 논문집은 기록학이 시대가 변해도, 다른 전문 분야에 적응하고, 흡수하고, 융합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네델란드에서 기록학을 연구하는 외국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기록학을 풍부하게 만들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 흥미롭습니다.

 

그러므로 기록학이 진실로 활력찬 전문 분야이며 계속 그럴 것이라는 많은 조짐이 있습니다.

 

기록 이론: archival/archive theory

기록학: archivistics 








Posted by 한국기록전문가협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ㅎㅎ 2018.03.16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에 오타있습니다 수정하시면 댓글 지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