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이 만들어가는 칼럼 '아키비스트의 눈' 입니다.

이번 아키비스트의 눈은 '이철환'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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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비스트의  :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

금융정보분석원 기록연구사 이철환

오늘 의문형의 희망프로젝트(http://hope-interro.org/project-new/)에서 진행하는 서경식 특별강연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강의는 2003 서경식 선샌님과 일본 NHK 함께 제작한 아우슈비츠 증언자는 자살했는가,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그에 대한 서경식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강연 이후 예술은 희망을 불러올  있을까?’라는 주제의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되었는데,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리고 강연을 들으면서 프리모 레비의 삶과 문학이, 그것을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서경식의 목소리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리모 레비(https://ko.wikipedia.org/wiki/프리모_레비)는 이탈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으며,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이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많은 증언 문학을 남겼습니다. 그의 문학은 아유슈비츠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항상 인간성은 무엇인가, 인간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결국 그런 고민의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나치의 아우슈비츠는 1945년에 문을 닫았지만, 그곳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아우슈비츠는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연을  서경식은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서승, 서준식  형이 감옥에 가는 불행을 겪은 재일 조선인입니다. 그의 에세이는 항상 디아스포라에 대한 공감, 인간성을 상실하게 하는 폭력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프리모  레비에 깊은 공감을 했던 것도, 이런 개인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대한 폭력에 인간성을 말살 당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에 대한 공감이었을 것이고, 그것을 잊지않고 고통스럽지만 증언하는 일에 대한 공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고, 강연을 들으면서 프리모 레비, 그리고 서경식의 고통의 기억이 비단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2016 한국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또한 공감할  있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프리모 레비같은 유대인이 겪었던 것처럼 파시즘에 지배받았던 고통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현재도 진행중입니다. 아직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가 외교 현안이 된다는 것은 프리모 레비에게 아유슈비츠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우리에게 식민지의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비단 일본 식민지 기억만은 아닐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독재정권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사상의 자유가 억압되고, 인간의 자율성이 침해된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아직 생생하게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 문제가 기억을 둘러싼 과거에 대한 전쟁이라면, 독재의 기억은 보다  현재와 이어져 있는  같습니다. 지금 한국을 괴롭히고 있는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는 청산하지 못한,  반대로 그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 대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세상에 증언하는 것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서경식은 그런 프리모 레비를 통해 본인의 방법으로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그런 일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잊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세상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들추어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강의 중간에 서경식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했던 일을 예로 들었습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난 , 일본 정부는 그것을 기억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유무형의 압박을 가했다고 합니다. 잊지 않도록 하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이야기하기보다, 그저 재건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활동만 지원한 것입니다. 프리모 레비도 자신의 증언에도 이런 세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상실감에 빠졌고, 그런 무력함은 결국 그를 자살하게 만들었습니다.

잊지 않도록 하는 . 그리고 그것을 통한 인간성을 회복이라는 말을 들으며, 이것이 결국 궁극적인 아카이브의 목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리모 레비가 고통을 받았던 것처럼, 잊지 않도록 하려는아카이브는 사회에서 미움을 받을  있습니다. 우리 기록 공동체는 이미 세월호 기록에 관련한 일을 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있습니다. 우리가(세월호 기록 관리에 힘을 보태지 못했는데 우리라는 표현을써서 죄송합니다) 세월호 기록을 정리하고, 보존하려고 했던 이유는, 기록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리모 레비가 고통스러워했던 것처럼, 잊지 않으려는아카이브, 그리고 아키비스트들은 잊으려는 세상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가 상심했던 것처럼 잊지 않음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회의하게  수도 있습니다.

어려움은  있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마지막까지 진정 내가 증언이 가능한 사람인가, 과연 제대로  증언이 가능한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서경식은 과연 어떤 고통의 기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  표상이 가능한가라는 문제가 현대 예술의  고민이라고 해설했습니다. 아카이브도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없을  같습니다. 과연 우리가 구축한 아카이브라는 것이  아카이브가 담고 있는 사건 등을 표상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과연 아카이브는 사람들에게 기록을 통해  사건을 제대로 전달할 수나 있는 것일까요? 물론 이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으려는 자들은 끊임없이 자기의 신념을 계속 지켜갈 것이고,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오늘 강연의 주제처럼 의문형의 희망이라도 갖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카이브, 아키비스트라는 전문영역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틀에서 우리는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화가, 시인, 작가 같은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사서들은 정제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고, 아키비스트는 기록을 통해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오늘도 현장에서 잊지 않으려고 투쟁하는 많은 기록인들에게 프리모 레비, 그리고 서경식의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한국기록전문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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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선동아저씨 2017.02.21 2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 익명을 빌려 몇가지 말씀드리면,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주제와 기억의 문제는 조금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성의 회복은 과거의 인정과 반성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이며,
    (집단)기억은 살아있는 생물로서 망각과 변형의 과정에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아키비스트는 망각으로부터 대항하기보다 집단의 기억과 유리시킨채로 기록을 보존하는 custodior이었고,
    투쟁자는 별도로 존재했습니다.
    최근들어 아키비스트의 역할론이 불거지며 세월호아카이브(아카이브+활동공간이라 해도 무방하지만)가 생긴 것이겠지요.
    반대로 과거의 아키비스트들을 저항가, 혹은 활동가로 승격시키거나
    우리들의 '평범한 일'자체를 기억투쟁의 전선에 앞장선다는 자부심을 가질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키비스트가 진실된 기록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이용가능성을 높이는 일보다,
    정의를 정의라 말하면서 편향되다라는 비판에 흔들리지 말라는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