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의 비상한 관리 책임을 요구한다.”

 

  

 금번 국정농단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180건의 문서가 유출되었고 그중에는 국가기밀사항이 기재된 47건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초안이나 수정본은 기록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보니 검찰에서는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의 사법체계로 볼 때 어떠한 법령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가가 이번 사건의 쟁점이랄 수는 없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례에 견주어 대통령기록물법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판단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이번 사건은 대통령기록물법을 위반한 대통령기록물유출사건으로 판단하며, 금번의 수사와 별개로 대통령기록관리체계의 전면적인 현황 조사와 개선책 마련, 그리고 대통령직무정지 등에 대비한 비상계획의 마련 등을 요구한다.

 

 

1. 등록되지 않았더라도 기록이다.

 

 금번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취득된 문서들은 대통령비서실을 비롯해 정부부처에서 만들어진 기록이다. 업무담당자가 문서의 형태이든 사진이나 도면이든, 또는 녹음이나 녹화의 방식이든 혹은 전자적 방식이든 아니든, 업무수행의 사실과 그 내용, 업무 관련 정보를 구두가 아닌 매체를 이용하여 작성한 자료는 기록이다. 타 기관이나 타부서, 혹은 다른 업무담당자가 작성하여 접수하게 된 자료도 업무수행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업무기록이 된다. 초안이든 회람본이든 수정본이든 최종본이든 업무상의 기록이라는 본원적인 성격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어떤 단계의 기록, 어떤 버전(version)의 기록을 획득(capture)하고 등록하여, 공식적인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을지의 여부는 해당 업무와 내용의 특성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등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기록으로서의 본원적인 성격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등록은 기록의 효력 부여나 보존을 위한 것일 뿐이고, 업무수행의 증거로서의 기록본연의 성격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등록 여부가 기록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2. 유출된 기록은 대통령기록이다.

 

 대통령 자신(대통령권한대행과 대통령당선인도 포함한다)은 물론 대통령의 보좌기관, 자문기관 및 경호기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직무수행을 위하여 작성하거나 접수한 기록, 보유하고 있는 기록은 모두 대통령기록으로 규정된다. 이번에 알려진 대통령의 연설이나 발언을 위해 준비된 기록은 물론, 대통령이나 대통령 보좌기구에 보고 혹은 접수된 각 정부기관의 기록은 모두 대통령기록이라고 하겠다. 특히 국가기밀의 유출이라고 하는 수사결과는 곧 이번 사건의 증거로 채택된 문서들이 기록이라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며, 더욱이 대통령실을 통해서 유출된 만큼 곧 대통령기록임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들 기록이 대통령실의 공식적인 문서처리과정에서 어떻게 통제되어 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대통령실에서 운용하고 있는 전자문서시스템으로 제어하고 있는 전자문서인지 아닌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문서번호나 결재 여부 등이 표기되어 있지 않으니 기록이 아니라는 항간의 이야기는 적합하지 않다. 전자문서시스템으로 운용되고 있던 경우라고 하더라도, 첨부문에 해당하는 전자화일이라면 출력물에 열람이나 결재 상태를 보여주는 아무런 표기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기록인가 아닌가의 문제, 대통령기록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대통령기록의 유출이라고 하는 이 사건의 본질이 호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쟁점이 되는 것은 검토나 결재, 수정 등의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개인()에게 이들 국정운영의 문서가 전달되어 기록의 내용이 검토되고 수정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검토와 수정이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연설과 국가 정책에 실제로 반영되었는지, 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도의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정상적으로 기록관리가 실행되었다면, 필경 이들 기록의 최종본은 문서관리시스템이 등록되어 그 원본이 보존되어 있어야 하고, 대통령의 관련 지시사항은 그 이후의 관련 문서를 통해서 다시 보고되었을 것이다.

 

3. 신뢰할 수 없는 대통령 기록관리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 대통령실의 기록관리체계가 과연 정상적이고 합법적으로 작동해왔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문서처리과정의 핵심 경로라고 하는 제1부속실을 통해서 유출되었다는 것은 증거로서 확인되었고, 여기에 보안관리를 책임지는 제2부속실의 협조나 묵인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하였으리라는 추론도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대통령에게는 대면보고든 아니든, 또 전자문서든 종이문서든, 혹은 메일이든 팩스든 전화든, 그 어떤 방법으로든지 원활한 업무보고와 업무지시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에 의한 국정운영의 사실과 내용은 반드시 기록으로 작성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고와 결재 등의 처리, 등록과 보관, 대통령실 기록관으로의 이관과 폐기,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으로의 이관, 공개와 보안관리 등 모든 기록관리 과정에 대해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갖춘 기록관리체계가 운영되어야 한다.

비록 이번 사건이 사람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지 못한 채 운영되어온 대통령기록관리체계의 환경적 요인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현재의 상태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와 분석이 이뤄져야한다. 대통령기록의 유출 경로를 확인해내는 것은 검찰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대통령기록관리체계를 면밀히 되짚어보는 것은 대통령 비서실 기록관과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의 책임일 것이다.

과연 이를 수행해낼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대통령기록이 아니라거나 심지어 기록조차 아니라는 납득하기 힘든 주장에 기대어 책임을 방기한다면, 결국 기관의 존립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낳게 될 것이며, 마침내 국민들의 요구는 물론 국회와 정치권의 압력마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4. 대통령기록관리의 비상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헌정 사상 최초의 상황을 맞고 있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누군가의 비리가 아니라 대통령 자신이 범죄를 공모한 피의자로 지목된 상태이다. 물론 아직 결론이 난 상태가 아니므로 피의자의 권리 역시 보호되어야 마땅하지만 만일 퇴진”, “하야”, “탄핵”, “조기대선등 국민들의 요구와 정치권의 논의가 하나 같이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중대한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이는 곧 대통령기록을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일 탄핵에 의해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중단되고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면, 국정 운영을 위한 검토와 판단을 위하여 현재의 대통령실 기록은 총리에게 충분한 접근이 허용되어야 한다. 나아가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가결되거나 혹은 대통령 스스로 하야하게 된다면, 곧이어 대선이 추진되어야 할뿐 아니라, 현재의 대통령기록은 국가기록원을 통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어야 한다. 15년 이상의 보호대상 기록을 지정하는 대통령의 권한 발동 여부도 논란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대통령기록물법이 제정된 참여정부 이래로 대통령기록의 이관과 보호대상지정이 늘 문제가 되긴 하였지만, 이번엔 특히 대통령이 중대 범죄의 피의자로 명시된 초유의 상황이다. 이에 대한 비상한 대비가 시급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통령실 기록관이나 국가기록원의 협조 수준으로 가능한 일이기나 한지, 이들에게 맡겨도 되는 일인지 가늠해보기도 어려운 때이다. 그나마 민간 출신의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는 국가기록관리위원회와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 경우도 그 구성마저 알려져 있지 않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한 가지 제안하자면, 지금이라도 당장 국가기록관리위원회의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향후 정국의 변화에 따른 대비책을 검토, 수립해야겠다. 또한 총리실에는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이 직무를 시작할 때까지 대통령비서실 기록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등에서 이뤄질 대통령기록의 관리와 통제, 이관 등을 통괄하며 감독하는 대통령기록관리 특별담당관을 임명하여 운영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 논평을 계기로 기록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와 제안을 기대합니다.

 

2016. 11. 22.








Posted by 한국기록전문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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